역싸 속에 나타난 조선시대 제주의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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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3-01-03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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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길운절이 끝내 숨길 수 없음을 알고, 또 일이 성공된 뒤에는 제주도의 병권(兵權)이 당연히 문충기 등에게 모두 돌아가고 자기는 혼자 외롭게 그들 위에 있다가 목숨을
보전하지 못할까 두려워하여, 역모사건을 고변한다 .《선조수정실록》 선조 34년 7월 병신.
2) 관기(官妓) 곤생(昆生)과 그의 딸
1703년(숙종 29) 6월에 도임한 제주목사 이희태는 제주에 부임하면서 첩과 첩의 조카, 혹은 전 남편의 자식이라 거론되는 아이를 데리고 부임하였다.ꡑ고 하였다.
제주목사 이희태는 죄를 추문하는 과정에서 형을 남발하여 곤생의 딸 3명을 곤장으로 때려 죽이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로 인해 이희태 목사는 파직되었다.역싸 속에 나타난 조선시대 제주의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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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이희태는 이 사건을 비변사에 보고하고 생존한 곤생을 제주 지방인과의 교류를 단절시키기 위하여 본토 지역으로 유배시켜 줄 것을 요청하였다. 이희태 제주목사는 이를 숨기려 하였으나, 관기 곤생과 그의 딸 계정(桂貞)·차정(次貞)·삼정(三貞) 등이 이 사실을 알고 소문을 퍼뜨렸다.《숙종실록》권42, 숙종…(dr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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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기녀(妓女)
1) 제주기녀와 1601년 민란
1601년(선조 34) 길운절은 소덕유와 더불어 문충기 등과 6월 6일에 군사를 일으켜 목사·판관 및 두 고을의 관리들을 모두 죽이고 이곳의 군자(軍資)를 차지한 다음 크게 전마(戰馬)를 내어 바다를 건너 곧장 서울로 침범하기로 약속하였다. 거사일 전인 6월 4일에 무리들을 모아 성중에서 함께 계책을 세웠는데, 길운절이 정을 통한 제주목의 기생이 몰래 그 말을 듣고는 장차 무엇을 하려는가를 묻자, 운절이 숨기고 말을 피하였다. 이에 기녀는ꡐ내 비록 자세히는 못 들었으나, 목사를 죽인다는 말은 이 무슨 말인가? 만약 사실대로 말하지 않으면 여러 사람들에게 떠들어댈 것이다. 제주를 출륙한 곤생은 곡 서울로 올라가 신문고를 울려 억울함을 호소하였다. 그러자 이희태 목사는 이에 원한을 품고 다른 관기를 시켜 곤생 모녀를 妖惡罪로 고발하도록 하였다.